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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우리 지금 만나
    • 작성일
    • 2018.11.05
  • 우리 지금 만나

    글 |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9월 맞이한 안식월은 쉼을 가지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단순히 휴양만을 즐기지 않고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날 수 있었다. 회포를 풀고 그동안의 삶을 나누었다. 안식월을 마치고 복귀한 현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안식월은 내게 있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단, 쉬고’ 사업 덕분에 그런 안식월을 재정적 어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었다.   


    # 광주 기행



    518의 기억. 
    민중봉기의 처절한 투쟁의 흔적을 훼손하고 지워버리겠다는, 지난 보수정권의 악행이 끝나지 않은 현장을 방문했다. 어떻게, 그 민중들의 피눈물겨운 저항을 흰색페인트로 덮어버릴 수 있나. 서명용지에 이름 석자 적는 것 외에, 우리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워낙 훼손된 현장이어서 우리는 딱히 어디에서 묵념을 할 수 있을지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그저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먼저 가신 분들을 향해 눈을 감았다.

    냥이의 신비, 그리고 안전가옥
    고양이들이 반겨주는 너무나도 의지되는 아는 누나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술맛이 너무 좋았다. 인천 혐오세력에게 절대 노출될 것 같지 않은, 아니 노출되어도 우리가 금새 찍어눌러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의 공간. 안전가옥. 기도하며 절해야 할 것 같은 카리스마의 눈빛을 보내오는 냥이들, 그러나 또 어느새 그 귀여운 몸동작에 녹아버리는 우리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행복을 나눴다.

    행동파 페미니스트.
    광주여성민우회의 훌륭한 활동을 이어가는 존경스러운 동지들을 뵈었다. 우리는 서로의 단체를 신나게 다시 소개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몇몇 분들은 알파카가 되어주셨다. '우리는 연결 될수록 강하다'는 무지개빛 문구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인천의 공포가 잠시 떠올랐지만 결코 그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연결된 우리가 끝끝내 함께 저항할 것이라는 확신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 '연결됨'을 눈으로 직접 만진 느낌.

    끔찍한 성착취의 현재진행형.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지하에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직접 쓴 시와 기록들을. 절벽에 내몰렸다는 표현이 모자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처절한 살아냄의 기록들. 그 고통에 우리의 눈물을 얹을 뿐. 아니, 눈물 위에 또, 분노의 연대를 얹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 안식이란 무엇일까.



    내가 안식월이란 걸 아는 사람들은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온 나에게 안식월인데 왜 왔냐고들 했다. 안식월엔 그냥 활동과 관련한 모든 것을 잠깐 접는 게 맞는 걸까. 안식월 시작 전부터 들던 고민이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의 혐오범죄 사태 뒤, 다음 월요일에는 인천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끔찍했던 현장의 경험으로 잠을 설치다 아침 7시에 잠이 들었고, 11시에 잠깐 눈이 떠졌다. 기자회견에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안식월인데 셔야지!!' 라는 일종의 강박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뜨고 기자회견 소식들이 들려왔다. 마음이 헛헛했다.

    헛헛한 마음의 동료이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 술 한 잔 기울이며 당시의 얘기도 하고 활동 얘기도 하니 헛헛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그 다음날은 그 현장에서의 힘들었던 경험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안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 스트레스 받는 사무 업무, 활동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활동,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안식이지 않을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안식월이라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그걸 억지로 분리하려는 시도는 유의미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아직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안식월이 끝난 지금도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히 할 수 있다. 내가 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이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라는 목적과 실행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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