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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래군의 사람살이] 인권운동 30년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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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운동 30년의 반성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


    불에 탄 청바지 한 조각

    지난 6월 5일, 인권도서관 동화에 만든 <冬花 박래전 추모관> 개관행사를 가졌습니다. 좁은 공간에 60명이 넘게 찾아오셨고, 다큐 <겨울꽃> 상영회까지 잘 마쳤습니다. 이번 30주기에 가장 의미가 있었던 일은 제 동생의 유품을 1차로 정리했다는 겁니다. 어쩌면 피하고 싶어서, 숭실대 기념사업회 사무실 한 편으로 밀어두었던 동생의 옷가지와 구두 등을 30년 만에 복원했습니다. 전문가 선생님들이 바쁜 시간을 내어서 애써주신 덕분입니다. 

    개관식 하루 전날, 주인을 잃은 구두를 받았을 때 마음의 동요가 있었습니다. 구두는 예상했던 모습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청바지와 양말 한 켤레, 손수건 등을 받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에 타다 남은 청바지 한 조각을 보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소화기로 불을 끈 뒤 옥상 바닥에 뒹굴던 모습이 그려졌던 거지요. 추모관에 전시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해서 개관식에는 종이 상자에 담겨있는 그대로 보여드렸습니다. 

    6월 6일, 제 동생 30주기에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서 추모식을 진행했습니다. 강원대 학생 3백여 명이 현장 수업의 일환으로 찾아왔습니다. 숭실대 동문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30년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모식을 이어온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거기에 유가협의 어머님과 아버님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회단체 분들이 참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지난해에는 힘들어서 못 오신다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먼저 가시겠다고 해서, 그날 아침에 모시고 왔습니다. 그 어머님이 내년에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겹쳤습니다. 30년 세월 동안 고된 삶의 흔적이 어머님 얼굴에 주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30년, 성찰의 시간

    동생의 분신이 계기가 되어 시작한 인권운동입니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많은 일도 했는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허탈해집니다. 국가의 폭력과 범죄를 폭로하고 국가의 인권침해를 막아내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냈던 제도와 시스템이 일순간 후퇴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폭력기계인 국가와 싸우며 숱한 죽음의 현장에서 다짐해왔던 마음,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향해 모질게 먹었던 마음과 열정을 돌아봅니다. 

    30년 동안 세상을 조금은 바꾸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지옥은 막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집회와 시위를 할 자유와 공간은 열렸지만 생명을 유지할 공간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안전을 포기해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이 있고,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한 ‘투명인간’들이 있고, 어떤 저항도 못하고 조용히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에 가해지는 무수한 혐오와 모욕이 있습니다. 혐오의 문화, 차별의 문화는 죽음의 문화로 이어지고, 그런 문화들이 당연시되는 세상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저항주식회사’란 말이 있듯이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한 저항운동도 어느새 자본질서에 편입된 것은 아닌지, 내가 하는 인권운동이 제대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

    거대한 변화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촛불항쟁 이후 세상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1년 전만 해도 누가 남과 북이, 그리고 북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하리라 생각을 했나요. 분단체제가 허물어지고 있고 평화로 가는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이 변화가 가져올 결과는 분명 긍정적일 겁니다. 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과거 분단 프레임에 묶였던 정치세력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폭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정치질서가 탄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의 한 편에서는 촛불 이후 직장갑질을 폭로하는 싸움이 이어집니다. 미투운동은 가장 오래된 차별 구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 중에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들이 저지른 범죄 사실들이 폭로되고 있고, 재판마저 거래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사법농단 사건들이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된 생명과 안전을 위한 4.16운동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건과 사고들, 운동들이 진행되는 지금입니다. 그래서 촛불시민혁명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촛불항쟁이 혁명으로 명명되기 위해서는 이런 운동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제도와 시스템으로 안착되고, 국가와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겠지요. 차별과 혐오를 낳은 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그 세력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소수자와 약자의 강고한 연대가 필요한 때일 것 같습니다. 

    ‘모두를 위한 선언’

    마침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입니다.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되새겨 ‘모두를 위한 선언’ 캠페인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를 약속하자고 제안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인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겠습니다.

    7월 14일에는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립니다. 재단에서는 텀블벅에 예쁜 굿즈를 올려놓고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굿즈는 그날 광장에서부터 받아볼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다양한 소수자와 약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연대를 과시하는 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권옹호자이고 그렇게 되기를 약속하는 사람들이 ‘모두를 위한 선언’을 하고, 연대의 손을 잡는 날이길 바라면서 광장에 나가겠습니다. 반갑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